지난해 5월 필자는 오디오 전문지인 『월간 오디오』에 오스트리아의 신생업체인 루멘 화이트에서 내 놓은 화이트라이트의 이모저모를 살펴본 적이 있다. 여기서 "순백색의 찬란함을 아는가?"라는 제목으로 필자가 쓴 당시의 글 한 대목을 인용해 보자.
‘막힘이 없는 자연스러움이 한껏 살아나지만 혼탁함과는 거리가 멀고, 절도가 넘치지만 섬세한 세부 표정이 살아나는, 수렴과 발산의 균형감이 뛰어난 음향은 이 스피커가 새로운 스타일의 빈 음향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투명함과 자연스러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공간감이 뛰어난 음향 무대 속에 화사한 음색과 명쾌한 선율선이 능소능대하게 녹아드는 세련된 음향이 화이트라이트에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스타일의 빈 음향이라! 그런데 그게 대체 무엇일까? 이를 위해서는 빈의 전통 음향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그것은 화사한 음색과 유려한 선율미가 그보다 더 매끄럽게 떠오를 수 없는 음향, 사뿐하지만 매듭이 분명한 리듬이 상큼하게 살아나는 음향, 명쾌하지만 날카로워지는 법이 없는 다이내믹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음향 등을 가리킨다. 이렇게 보면 빈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품격의 화사함·우아함·경쾌함, 그리고 피아니스트 바두라-스코다가 연주하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에서 살아나는 우아한 선율미 등을 연상케 하는 음향을 들려주는 것이 화이트라이트인 것이다. 그것은 중후함을 빙자하여 짐짓 잰 체하는 심각함을 벗어던지고 음악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하는 음향이라고 하면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화이트라이트가 보여 주는 새로운 스타일의 빈 음향이란 무엇일까? 거두절미하면 이처럼 풍부한 색채와 유려한 선율미가 흘러넘치는 음향 조형에 절제의 미학을 실어올린, 정연한 균형감이 살아 있는 음향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고품격의 우아함을 전면에 부각하면서도 음악의 내성부를 투명하게 그러나 아스라하게 투사하는 절묘한 균형 감각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내는 음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만 하면 최고의 찬사를 화이트라이트에 안겨 주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로부터 한 해를 넘긴 2006년 봄 루멘 화이트는 새로운 플래그십 모델을 출시하면서 하이엔드 스피커 메이커의 입지를 완전히 굳히려는 야심을 보여 주고 있다. 다이아몬드라이트가 그것이다. 그러나 외양만 살펴보면 이들 두 모델은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다이아몬드라이트는 판매 가격만 1억 원을 훌쩍 넘는 슈퍼 하이엔드 스피커이다.

그렇다면 이들 두 모델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먼저 공통점부터 살펴보면, 다이아몬드라이트는 화이트라이트의 기술 내용을 거의 대부분 그대로 승계하고 있다.
루멘 화이트에서 내 놓는 스피커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B&W의 노틸러스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유선형 인클로저이다. 류트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인클로저에 대하여 루멘 화이트의 설계자인 하르무트 뢰머는 ‘제트밸브’ 형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자신의 스피커는 기존의 설계 방식, 그러니까 음향 이미지를 혼탁하게 하는 드라이브 유닛의 후음을 처리하는 데 흡음제나 댐핑 테크닉을 사용하지 않고, 인클로저 내부에서 후음 자체를 자연스럽게 소멸시키는 깔때기 형태를 채택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루멘 화이트의 스피커들은 음향 자체의 순수함과 자연스러운 울림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MDF나 파티클보드 같은 혼합재가 아니라 천연 목재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합성 목재에서는 얻을 수 없는, 천연 목재의 균일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음색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설계 의도를 자사의 제품에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스피커를 신데렐라 자리에 단번에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 것은 아큐톤에서 제조하는 다이아몬드 멤브레인을 진동판에 채용한 트위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 B&W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만큼 대서특필할 정도는 아니지만, 다이아몬드 트위터가 연출하는 안정성·하이스피드·견고성 등은 이들 스피커의 음향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면 다이아몬드라이트에 담긴 새로운 면모는 무엇인가? 먼저 인클로저부터 살펴보면, 다이아몬드라이트의 인클로저는 높이가 137센티미터로서, 118센티미터인 화이트라이트에 비하여 19센티미터가 더 크고, 전면 폭도 각각 34센티미터와 28센티미터로서 6센티미터가 더 넓으며, 깊이는 각각 64센티미터와 62센티미터로서 2센티미터가 더 깊다. 그러나 양 모델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바로 무게에 있다. 화이트라이트가 52킬로그램인 반면에 다이아몬드라이트는 90킬로그램으로서 무려 38킬로그램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무게 차이가 38킬로그램이라! 양 모델이 보여 주는 가격 차이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용을 차분히 따져 보면 이것은 그리 간단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인클로저 내부에 흡음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천연 목재만으로 40kg에 육박하는 중량 증가를 이끌어 낸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구동 방식과 사용 유닛에 대하여 살펴보면, 이들 두 모델은 3웨이 5유닛 구동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인클로저의 규모가 커진 만큼 유닛을 바꾸는 것 또한 당연하다. 무엇보다 먼저 다이아몬드 트위터의 경우, 화이트라이트에서는 1인치 구경의 유닛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에, 다이아몬드라이트에서는 1.2인치 구경의 유닛을 사용하고 있으며, 미드레인지의 경우, 3.5인치 구경의 세라믹 역돔형 유닛에서 7인치 구경의 유닛으로 바꾸었고, 세 개를 사용하고 있는 우퍼의 경우, 7인치 구경의 세라믹 역돔형 유닛에서 9인치 구경의 유닛으로 바꾸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결국 다이아몬드라이트는 화이트라이트의 표현 능력을 한층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초대형 스피커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러한 면모는 스펙 가운데서 주파수 응답특성만 살펴보아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 가운데서 저음역의 응답특성만 살펴보면 화이트라이트가 28Hz까지 재생하고 있다면, 다이아몬드라이트는 18Hz라는 초저음역을 재생하고 있다. 다만 고음역 재생의 경우 화이트라이트가 100kHz인 반면에 다이아몬드라이트가 60kHz인 점을 견주어 보면, 화이트라이트가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모델이 가청 주파수대역을 세 배 이상을 초과하는 응답특성을 한결같이 보여 주고 있다면, 이러한 차이를 표현 능력의 우월로 곧장 연결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이처럼 무게만 90kg에 달하는 헤비급 인클로저를 채용하고 있는 다이아몬드라이트가 지향하는 음향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 경력이 다소 부족한 애호가라면, 윌슨 오디오의 그랜드슬램에 육박하는 장대한 음향 무대, 4관 편성 오케스트라의 총주까지도 여유 있게 받아넘기는 중후하면서도 강력한 다이내믹 등을 이끌어 내는 음향을 생각하기 쉽겠지만, 다이아몬드라이트는 그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아니 시각과 차원을 달리하는 정갈한 음향을 연출하는 스피커이다.

화이트라이트와 비교해 보면 중량감·공간감·음향 윤곽 등을 연출하는 데 있어서 한층 육중해지고, 안정감 또한 한결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한층 광활한 음향 무대를 활주하는 올이 굵은 선율선을 헌걸차게 연출하고 있지만, 다이아몬드라이트는 따사로운 온기를 머금고 있는 화사한 음색, 매듭과 풀림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유연한 선율선과 사뿐한 리듬, 그리고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티시모까지 유연하게 굽이치는 다이내믹 등이 깔끔한 조화를 이룬 삼삼한 음향이 꽃봉오리가 터지는 듯한 모습으로 살아나고 있다. 21세기가 요구하는 전아한 음향의 전형이라고 하면 딱 알맞을 음향이 이 스피커에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라이트가 추구하는 음향을 명시한다면, 그것은 ‘듣는 음향’이 아니라 ‘보는 음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스피커는 음향을 쏟아내면서 감상자의 피부를 간질이는 육감적인 음향을 지향하기보다는, 대형 화폭 속에 백화(百花)가 제방(齊放)한 듯한 음향 풍경을 깔끔하게 새겨 넣는 음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럴 때 마치 잘 찍은 풍경 사진을 새겨 넣은 듯한 음향 무대로 감상자를 초대하는 듯한 음향을 다이아몬드라이트가 연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자신의 존재를 과장하지 않고 음향 무대 저 너머에 있는 다채로운 음향 풍경을 상큼하게 제시하는 모습은 이 스피커가 간직하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다.

이러한 음향 조형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연함과 투명함을 자연스럽게 용해하는, 상하 좌우 어디를 살펴보아도, 과부족이 전혀 없는 뛰어난 대역 밸런스와 깊은 관련이 있다. 마치 파스텔화를 보는 듯한 삼삼한 색채 표현과 온화한 음향 무대를 배경으로 하여, 이보다 더 섬세할 수 없는 광채가 번뜩이는 화사한 고음역, 마치 공기의 흐름을 쥐락펴락하는 듯한 절묘한 굽이와 미려한 표정을 이끌어 내는 중음역, 절제된 듯하지만 부드러운 음색과 사뿐한 확산감을 이끌어 내는 저음역 등은 이 스피커가 추구하는 화사함의 미학을 구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대목에서 이 스피커가 가진 최대 장점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이 스피커를 시청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바로 피아니시모, 그러니까 소음량 재생에서 다이아몬드라이트가 보여 주는 절정의 표현력이었다. 신호 도입부, 그러니까 어택 시점의 경사 각도가 그리 가파르지는 않지만, 피아니시모의 악음이 시작되기 직전 다이아몬드라이트가 표현해 내는 독특한 긴장감, 집중력, 밀도, 그리고 선율의 지속력 등은 발군이라고 할 만하다. 잔잔하게 그리고 아련하게 흐르는 현악 앙상블의 진정한 매력이 다이아몬드라이트에서 한 점 숨김없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순백의 화폭 위에서 말이다.

지금까지 루멘 화이트의 새로운 플래그십 스피커인 다이아몬드라이트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다이아몬드라이트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순백의 화폭을 아리땁게 채색하는 곱디고운 음악의 풍경화를 연출하는 스피커라고 하면 좋을까? 이쯤에서 작년에 필자가 발표했던 화이트라이트에 대한 글의 결론을 인용하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보면 이 시스템의 메시지는 아주 분명하다. 밝지만 경박해지지 않고, 화려하지만 추해지지 않는 음향! 투명하지만 경질로 흐르지 않는 음향! 유려하지만 절도가 살아 있는 생동감 넘치는 음향! 이것은 뛰어난 해상도와 자연스러운 공명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고, 음악의 관점으로 보면 음악과 공간을 잡티 하나 없는 순백의 공간 속에 통합하려는 노력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세련미 넘치는 화사함과 유연함이 살아 있는 명쾌함이 조화를 이룬 투명한 음향 세계를 지향한다는 것! 그건 듣기만 해도 가슴이 절로 뛰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화이트라이트를 뛰어넘는 슈퍼하이엔드 모델인 다이아몬드라이트에 대해서는 뭐라고 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세련미 넘치는 화사함과 유연함, 그리고 여기에 한층 뛰어난 안정감, 중량감, 당당함 등을 가미한 헌걸찬 음향! 이제는 당당함까지 연출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빈 음향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