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압 트랜스를 채용한 간결한 구성이 큰 특징 80년대까지만 해도 LP 재생을 위한 포노단이 프리앰프에는 물론이고 인티앰프, 심지어 리시버에도 기본으로 장착되어 생산되곤 했었다. 그러나 최근엔 프리앰프에서 조차 이 포노단은 아예 생략되어 있거나, 아니면 별도의 옵션으로 발매되고 있다. CD가 소스의 주류를 차지 하는 지금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여겨질 수 있으나 LP를 사랑하는 애호가들에겐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정확한 RIAA커브 보정을 위한 포노단의 제작은 매우 까다로워 제작자들도 적은 수요를 바라고 양질의 포노스테이지를 공급한다는 것이 수지면에서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음은 자명한 일이다. 앰프의 회로 구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파라비치니의 작품인 이 작고 귀여운 포노스테이지는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애호가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제품이 아닐까 싶다. 옵션으로 게인 컨트롤이 장착된 이 모델은 전면에 전원 스위치가 붙어 있고, 후면에 금도금된 입출력 단자와 전원 소켓 , 그리고 MM/MC 전환단자로 이루어진 매우 간결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내부는 토로이덜 트랜스로 구성된 전원부와 RIAA 보정 회로로 양분되어 있고, 고출력 쌍3극관인 El제 ECC83(12AX7) 3개가 사용되었는데, 3개의 진공관이 각각 좌우를 담당하고 있다. 게인 컨트롤에 사용된 가변저항은 알프스사의 블루 벨벳으로, 신뢰감이 가지만 기타 저항이나 전원부의 콘덴서 등은 중급의 부품들이 사용되었다. 역시 파라비치니의 작품인 승압비 1:10의 트랜스가 PCB 기판 위에 구성되어 있어 5∼50Ω 정도의 임피던스를 가진 MC 카트리지에 대응하고 있다. MM 카트리지의 대응 임퍼던스는 47kΩ이다. 필자가 사용하고 있는 프리앰프 또한 12AX7 3개로 구성된 포노단이 장착된 기기여서 음질 비교가 비교적 용이하였다. 시청에 사용된 카트리지는 SPU 골드 레퍼런스, 승압 트랜스는 피어리스 K-221Q로, 필자의 메인 시스템을 이용했다. 우선 야나체크 현악 4중주단이 연주하는 하이든의 ‘농담’ 초반부에서 스테이지감이 뚜렸이 형성되고, 각 악기의 표현이 풍만하게 표현된다. 솔리드스테이트 포노스테이지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진공관 음색으로, 사운드가 앞으로 내닫듯 살아나는 음색이다. 피어리스 승압 트랜스, 가락 프리앰프의 조합보다는 해상력에서는 조금 평이한 편이나 좌우의 펼침은 뒤지지 않는다. 성악곡에서 가수의 입 위치도 무대 중앙에 뚜렷이 형성되어 RIAA 커브 재생이 매우 충실함을 알 수 있다. 폴리니의 피아노 타건도 뚜렸하며 김광석 제3집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에서 기타 연주의 고역 에지도 분명하다. 본기에 기본으로 장착된 El제 진공관도 제법 성능이 좋은 것으로 선별된 것이 틀림없는 듯하나, 진공관을 텔레푼켄 각인 스무스 플레이트로 교환해 본 결과, 더욱더 유연하고 풍부한 음으로 변화함이 느껴질 것이다. 필자의 와이프가 값비싼 재료의 조합으로 만든 음식맛보다, 싼 음식 재료의 조합이지만 어머니가 만드신 음식 맛이 월등하듯, 회로구성의 천재 파라비치니의 소박한 부품 구성으로 최대한의 성능을 이끌어낸 이 작품은 아날로그 애호가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임을 확신다. (조상훈) 박력있고 시원한 표현력 재즈에서 장점이 발휘되다 파라비치니가 설계한 앰프들을 접하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물론 필자는 파라비치니의 예찬론자는 아니다. 오히려 그가 설계한 제품들은 필자의 취향과는 좀 다른 면이 있었으므로 약간 비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곤 했었던 것이다. 이 포노스테이지는 음악의 골격을 탄탄하게 표현하면서 박력있고 시원한 표현력에 중점을 둔 재생을 목표로 한 것 같다. 아날로그 소스가 디지털 소스에 비해 섬세함에서는 앞서지만 박력과 다이내믹에서는 좀 부족하다는 결점을 공략하여 소비자에게 그 차별화를 어필하기 위해 만든 제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진공관식 포노스테이지에서 느껴지는 특성인 질감의 풍부함, 음악성, 포근함 등도 분명히 느껴지는 음이다. 클래식 음악의 재생도 무난하지만, 필자의 소견으로는 재즈나 올드팝 등의 소스를 재생할 때 더욱 장점이 나타나는 것 같다. 표현되는 질감이 아주 고급스럽고 부드럽다기보다는 다소 대담하고 칼칼한 음색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몇 개의 재즈 LP들을 걸어보았는데, 이 기기가 가진 약간의 컬러레이션이 재즈의 분위기에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색소폰의 음색은 다소 무거운 것 같기도 하지만 보컬의 진한 감칠맛은 훌륭했다. 클래식의 대편성곡에서 음량을 올리거나 할 경우에 다이내믹의 표현에서는 별로 불만이 없지만 각악기간의 분리도라든지 해상력의 표현은 평범하게 처리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아날로그 관련제품들이 꾸준히 소개되니 필자로서는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서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