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숙하고 세련된 격조를 지닌 하이엔드 제품 언제부터인가 이태리산 오디오 기기들이 오디오 숍의 진열대를 넓게 차지하고 있다. 목공의 아름다움으로 이름 높은 스피커는 물론이고 그 영역은 전자 분야인 앰프나 CDP까지 걸쳐 있다. 오디오라는 게 '어디서 만들던 무슨 상관이랴' 싶지만 영국하면 스피커, 미국이라면 육중한 파워 앰프가 자동 연상되는 스테레오 타입이 있게 마련이다. 패션이나 가구라면 당연히 이태리를 연상하겠지만 '이태리제 오디오?'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없다. 오랜 시간을 통해 축적된 상징적 이미지를 이태리 오디오는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태리의 오디오는 바로 지금 출발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깊은 연원이 없다. 적어도 일반용 하이파이 오디오 기기에 국한한다면 내 기억으론 10년 남짓한 역사밖에 갖추지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리제 오디오의 위상은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 짧은 시간에 이룩해 놓은 성과의 바탕에는 문화적 전통이 있다. 적어도 디자인 측면에서 이태리제 앰프의 독특한 개성은 기존의 획일화 된 앰프 형태를 일신시키지 않았던가. 이태리 오디오의 등장으로 오디오가 더욱 재미 있어졌다고 해야 할까 획기적 발상의 형태와 색채까지를 집어넣은 몇몇 이형(異形)의 앰프는 신생 메이커의 것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원숙하고 세련된 격조를 지니고 있다. 디자인 역시 이태리!란 감탄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제 이태리제 오디오는 현대 오디오의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구성 인자가 되어버렸다. 이번에 소개할 오디오 아날로그 역시 방금 전이라고 할 수 있는 1995년에 설립된 오디오 메이커다. 출발은 늦었지만 독특하고 개성적인 제품들을 내 놓고 있다. 동사는 푸치니란 인 티그레이티드 앰프로 세계 오디오계에 등장했다. 단순한 패널 디자인이지만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지닌 앰프로 생활의 향기를 중요시하는 신세대 사용자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기종이다. 푸치니의 위상은 레퍼런스급 인티그레이티드의 입문기 성격을 지닌다. 결코 싸지 않은 가격과 고품위의 음, 세련된 만듦새로 보아 그 정도의 자리 매김은 객관적인 타당성이 있다. 푸치니의 성공에 힘입어 오디오 아날로그사는 업 버전 모델인 푸치니 SE(special edition)을 출시했다. 첫 모델 푸치니에 대한 애정으로 별도의 신제품을 만들지 않고 마이너 체인치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앰프의 개량이란 것이 뻔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앰프는 세부를 개선, 푸치니의 완성도를 높인 것이다. 푸치니의 패널을 그대로 사용하고 내부 회로 일부의 변경과 부품의 고급화, 전원부 보강을 그 내용으로 한다. 앰프의 구동력을 높이기 위한 기술적 보완이 담겨져 있다. 사실 필자는 이전의 푸치니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푸치니 SE의 개선점을 신구의 차이로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개선된 기기를 통해 이전의 앰프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수밖에 없다. 적어도 편집장이 두 앰프를 비교해보라고 한 것은 아니므로 보완된 푸치니 SE의 매력을 훑어보는 것에 의미를 두면 되지 않을까. 먼저 외관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새시에 들인 공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일반 앰프보다 두꺼운 철판으로 커버를 씌워 강성 확보와 자체 질량으로 앰프의 유해 진동을 흡수한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전면 패널은 두터운 알루미늄을 절삭 가공 후 혜어라인 처리했다. 패널 면의 금속 광택이 기품 있다. 앰프 메이커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해주는 지표는 바로 새시의 가공 정도다. 여기에 들인 노력이 크면 클수록 걸맞은 내용을 담으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어떻든 정교하고 매끈하게 가공된 새시가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셀렉터와 볼륨에 달린 대형 노브의 가공 정도도 훌륭하다. 끝을 둥글게 처리한 노브의 형태에서 푸치니의 인상은 결정 지워진다. 조작 부위는 오로지 2개 밖에 없다. 부속 리모컨으로 앰프 조작하는 것은 현대 앰프의 기본 사양이다. 푸치니의 리모컨은 정말 탐날 만큼 잘 만들어져 있다. 어지러울 만큼 복잡한 키도 없고, 여느 리모컨 같은 몰개성과 멀찌기 떨어져 있다. 마음껏 멋을 부린 금속제 리모컨은 예전의 앰프들이 갖던 조작의 쾌감을 작게 농축시켜 놓은 것 같다. 고급 지향의 격조를 잃지 않으려는 푸치니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이 격조를 즐기기 위해 사용자는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할 테지만‥‥ 내부를 보면 이전 제품과 달라진 몇 개의 차이 점(인터넷에 올라있는 이전 제품의 내부 사진과 비교했다)을 발견할 수 있다. 값비싼 폴리플로 필렌이나 폴리스틸렌 필름 콘덴서가 대폭 사용된 것이 눈에 띈다. 음질 개선을 위한 고품위 부품의 채택이다. 여기에 걸맞게 오차 범위가 0.1%인 메탈 필름 저항을 그야말로 듬뿍 사용하고 있다. 적어도 부품을 갖고 시비 거는 사람을 만들지 않으려고 작정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전 모델과 비교해서 가장 큰 개선은 바로 전원부의 보강이다. 여기선 트로이달 트랜스를 하나 더 사용해서 채널별로 전원 공급시킨다. 앰프 무게가 늘어난 이유는 바로 트랜스의 추가에 있다.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의 질적 차이가 전원부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오디오의 상식이다. 여유 있는 전원 공급은 힘의 예비가 생겨 음감을 안정시키고 피크 출력시의 불안감을 없애준다 스피커 구동력의 증강이 이루어짐은 물론이다. 소 출력 고품위의 음, 이는 어떻게 보면 앰프 설계의 이상이랄 수 있겠다. 무제한 물량 투입을 한 앰프에서 좋은 음이 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적어도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의 개발 테마는 실용성(가격이나 성능, 크기 등등의 제한)이다. 가정이란 공간을 전제한 충분 조건을 만족시키면 되는 것이다 크기의 제한이란 조건이라면 불필요한 출력을 위해 고민할 필요는 없다. 푸치니는 마치 잘 만들어진 진공관 앰프의 음과 같은 기름진 음향과 울림 풍부한 음악성을 위해 접근법을 바꾸지 않았을까. 상식적인 예측을 확인하게 된 것은 푸치니가 들려주는 음이었다. 채널당 50W/8W의 출력을 받아들인 스피커(트라이앵글 ANTAL, PMC TB-1)가 내주는 결 고운 바이올린의 음색은 출력을 욕심내지 않는 진공관 앰프의 울림처럼 다가왔다. 살바토레 아카르도가 연주하는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DG 415 378-2)은 도입부부터 유연하고 섬세하다. 풍부한 양감의 오케스트라 반주와 고 난이도의 바이올린 연주가 어우러져 음향공간을 꽉 채우고 있다. 앰프의 볼륨을 높여도 자극적이거나 시끄러워지지 않는다. 볼륨을 최대로 올려도 클리핑의 불안감이 적다. 혹시하는 마음으로 엘빈 존스의 드럼 연주를 걸어본다. 작열하는 드럼의 에너지가 앰프 출력의 빈약함으로 형편없이 축소되거나 양감의 단촐함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50W 출력의 앰프이므로 '어쭈! 이것 봐라' 하는 감탄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푸치니에서 '기존 인티앰프의 한계를 어쩌구•..' 하는 식의 대단한 부분이 넘친다는 것은 아니다. 만병통치의 묘약 같은 인티그레이티드 앰프란 없는 것이다. 적어도 푸치니가 과장된 성과로 성능을 부풀리고 있지 않는 점은 분명하다. 출력 대신 반응 빠른 음으로 음상의 선명도를 높인 것이나, 필요 이상의 저 음역 재생으로 사람을 흘리지 않는 점은 동사가 주장하는 음악성 높은 음에 충실하려는 시도로 보아도 좋다. 푸치니 구동력은 동급 앰프에 비해 만만치 않다. 음의 밀도감이 조밀하다는 느낌이 든다. 거칠지 않은 음을 내준다는 것만으로 푸치니의 인상은 좋게 작용한다. 게다가 이 앰프는 리니어리티가 좋다. 실용 음량이란 전제에선 음악적 밸런스를 잘 유지하고 있다. 이른바 스트레이트한 증폭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인데, 특정 대역이 부스트 되거나 대역간 밸런스를 급격히 무너뜨리지 않는다. 소 출력 인티그레이티드 앰프가 내는 대 음량시의 조마조마함이 가셔져 있다. 약간 밝고 화사한 표정의 음으로 푸치니의 전체적 인상은 정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볍거나 금속성 날카로움이 적다는 것은 이 앰프의 매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짝이 되는 CDP는 파가니니다. 동사 제품 네이밍을 보면 자기 문화에 대한우월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이태리란 나라는 몇 천년 전의 조상에서부터 근대의 인물까지 다 우려먹고 있다. C-32, 3018 하는 식의 건조한 모델명 대신 '파가니니' 하면 상징이란 플러스적 요소가 더 담겨져 있는 것 같지 않던가. 파가니니란 이름 때문에 연상되는 최고 경지에 대한 열정과 기괴한 광기를 그려 보게 된다. 외관은 푸치니와 같은 개념의 패널 디자인을 적용시키고 있다. 단단한 인상을 주는 두터운금속의 질감이나 단순하게 정리된 작동 버튼의 레이아웃 등이 세련되게 어우러져 있다. 픽업 메커니즘은 필립스의 최신형인 VAM1201 Short Loader Mk3이다. 이는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스텔로 CDA 200과 같은 것이다. 이 두 기종은 리모컨 조작키를 공유하니 참조하시길‥‥ 파가니니는 최신 CDP의 기술적 접근인 96KHz/24bit로 업 샘플링 되어 신호 출력된다. 기존 CD의 정보량을 보완하기 위한 수법과 기술적 추세를 반영한 새로운 접근의 CDP라 할 것이다. 이를 보조하기 위한 각 회로는 오디오 아날로그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 쓰여진다. 예를들면 기존 16비트 정보를 24비트로 높이는 D/D 변환부나 지터 감쇄를 위한 회로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하는데 크리스털 세미콘덕터사의 CS8420이나 아날로그 디바이스사의 신형 칩 AD1855 DAC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동사가 더욱 역점을 둔 부분은 아날로그 단으로 고급 부품으로 충실도를 더한 설계가 이루어져 있다. 기술력의 강조가 아닌 음악적 퀄리티의 유지를 위해 이 부분에 들인 노력은 기판의 레이아웃에서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내부 부품의 실장 패턴은 깔끔하고 합리적인 배치로 구성되어 있다. 신예 메이커의 불안함을 느낄 수 없다. 기존 CDP의 벤치 마킹을 통해 보완된 결과를 담고 있을 것이다. 파가니니는 디지털 출력단을 탑재해서 단독 트랜스포트로도 활용 가능하다. 두터운 새시의 채용으로 패널 뒷면조차 매우 굳건하다. 여기에 걸맞은 고급스런 금도금 단자가 주는 신뢰감은 각별하다. 아쉬운 점은 밸런스 출력을 갖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태리산 오디오 기기들의 공통적 성향인 것 같은 데 가정용 오디오 기기에 밸런스 출력은 필요 없을 거란 고집 때문이다. 유럽의 보수적 취향을 읽게 해주는 한 단면이기도하다. 하긴 쓰지도 않는 밸런스 출력단은 무용 지물이다. 파가니니는 전원 스위치가 뒷면에 달려 있어 항상 스탠바이 상태로 작동된다. 리모컨을 사용하지 않을 때 습관적으로 패널면의 전원 스위치를 찾아 더듬거리기도 했다. 두 개를 포개 놓으면 유기적 연관을 지닌 포름으로 안정감이 생긴다. 특별한 존재감을 앞세우지 않은 고상한 기품을 느낄 수 있다. 이 조합은 원 브랜드 오디오의 음악적 동질성과 기계적 호환성을 공유하는 오디오 아날로그사의 주력기다. 하이엔드 오디오의 갈망을 입문시켜 주는 역할이 클 것 같다. 외향과 내용이 걸맞고 그를 납득할 만한 음으로 조율된 균형감각 넘치는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