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포트폴리오를 거느린 유닛 제조사들의 행보에는 일종의 패턴이 있다. 어느 시점부터는 직접 스피커를 제조하게 되더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사업변신을 하게 되는 이유를 약간 근거리에서 살펴보면 보통은 자의 반 타의 반 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보인다. 전적으로 잘 팔리는 유닛들을 배출하다 보니 스피커 제조에까지 욕심을 내는 건 아니고, 팔 곳이 사라지는 경우에 문제가 생긴다. 주로 공급 루트가 끊기거나 하는 일이 반복해서 생기다 보면 혹은 자신의 유닛을 사용해서 제작된 스피커들이 기대 이하의 성능을 보인다거나 하는 경우가 되면 직접 스피커 제조를 검토하게 되는 것 같다. KEF, 포컬, 그리고 다인오디오가 그러하다. 그만큼 유닛 제조기술은 스피커 성능의 절반 이상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랬거나 저랬거나 유닛 개발에만 정진하는 전문제조사들은 여전히 많다. 유닛에만 집중해서 고정거래선 관리만 잘 해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위에 열거한 3개 사만 해도 현재의 하이파이 스피커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브랜드들이다. KEF는 BBC로 대표되는 전설의 영국 모니터들의 산파 역할을 했고, 포컬은 자칫 불모지가 될 뻔한 프랑스 스피커에 영감을 주어 영미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했다면, 다인오디오는 대역을 불문하고 소위 명기를 만들어내는 유닛으로 통하며 역으로 전 세계 스피커를 지배해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들 모두는 현재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스피커 제조사들로 성장해 있다. 특히 다인오디오의 경우는 제품 컨셉을 미묘하게 구분하고 개발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포트폴리오를 발휘하는 브랜드라 하겠으며, 그 결과 제품군의 규모에 있어서 상기 브랜드들 중에서 가장 방대하지 않을까 싶다.

 

필자가 C4의 시청기를 작성한 것도 거의 10년 전이다. 개연성 있는 얘기지만, 최근 10년 주기의 리메이크가 대단히 활발한 분위기이다. 다인오디오의 수많은 제품들 중에서 필자의 시청 경험을 기준으로 베스트를 꼽아 보자면 두 가지가 있었다. 구형 Confidence 3, 그리고 신형 Confidence 4이다. 조금 주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다인오디오의 대중적 히트작들은 이 두 모델을 중심으로 위 아래로 축소 및 확장시킨 결과물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다. Confidence 3는 위로는 Confidence 5로 확장되었고, 이후의 스페셜 25 제작을 기초한 다인오디오 스탠드 거치형의 표준이 되었다고 한다면, Confidence 4는 절정의 플래그쉽이었던 ‘에비던스’의 현실화 버전이자 막 개발된 ‘에소타 2’ 유닛을 장착할 다인오디오의 주력기였다.

 

에소타 2는 전편에 대한 부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의미 있는 후속작이었고, Confidence 4는 그 실력을 발휘할만한 멋진 요새를 만들어 냈다. 단순한 가상동축이 아닌 상하 대역설계를 달리해서 룸 어쿠스틱에 정교하게 대응한 DDC(Dynaudio Directivity Control Technology기술, HDF-MDF 적층 인클로저의 신기원과 독특한 전면 배플과 측면에 투입한 글라스 배플 설계, 그리고 풀 알루미늄 합금 구성 등 밀레니엄을 기다렸다는 듯 신기술과 사운드로 무장한 C4의 위용은 대단했다. 그 결과 딱 필자의 키 높이 만한 컬럼형 스피커인 C4에서 공진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져 있었고, 정교하고 세세하게 풀어내는 소리가 세련미를 잊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로부터 10년 후 이 제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리메이크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로 시그너춰 버전(혹은 ‘버전 2’라고도 한다)을 완성하게 되었다. 현재의 기술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모델이기도 하지만, 제작자 또한 이 제품에 대한 애착이 크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해볼 수 있다.

 

본 제품의 변화에 대해 다인오디오 측은 ‘미학적으로 순수해지고, 기술적으로 진보된 모델’로 설명하고 있다. 포트폴리오를 크게 보유한 회사의 장점으로서 종종 타 제품의 개발시에 거둔 성과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본 제품의 경우도 그러하다. 다인오디오의 사파이어와 컨시퀀스 얼티미트 버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얻어낸 유닛과 와이어링 기술의 업그레이드를 본 제품에 결합시키고 있다. 신제품에서 외관상으로 변경된 부분을 발견하기 쉽지 않지만, 실제로는 많은 부분이 변경되어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제품의 중량이 5kg 증가했고, 대신 능률은 2dB 낮아져 있으며 가격은 약 10% 정도가 상승했다.

 

우선, 실크돔 트위터 및 MSP콘을 사용한 미드-베이스 전 유닛들에 걸쳐 미세한 코팅작업이 더해져 있다. 코팅의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다인오디오에서 밝히고 있는 코팅의 효과는 변화의 핵심이고 음악의 정교한 세부묘사를 업그레이드시켰다고 설명한다. 그 다음으로 인클로저와 보이스코일 전체에 투입되었던 알루미늄 하우징 처리와 코팅방식 또한 업그레이드시켰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또한 업그레이드 내용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지 않아 리뷰어로서 무책임한 설명을 반복해야 할 것 같다. 다만, AB테스트를 해보지 않고도 그 변화의 폭이 분명히 감지되어 시청기에서 그 설명을 대신하기로 한다.

 

그 다음으로 외관상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으로서 수가공 목재마감 처리한 인클로저를 들 수 있다. 지난 봄에 있었던 국제 오디오쇼에서 본 마감을 본 바 있었는데, 발표한 지 10년이 된 모델이라서 이 마감만으로도 사뭇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CEO 빌프리트 에렌홀츠의 서명이 각인된 뒷 패널의 가치도 본 제품을 돋보이게 할 것이다. 원래 시그너춰 버전의 의미란 그런 것이다. 전면과 측면은 하이그로시 마감이고, 뒷면은 알루미늄 플레이트 배플 처리되어 있다. 마감은 다크 브라운 모카와 다크 레드 보르도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본 제품의 시청은 다고스티노(이젠 크렐이라 부르지 못하는)의 ‘모멘텀’ 모노블럭으로 진행했는데, 본 앰프에 대해서는 별도 시청의 기회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확한 위상이 만들어내는 음악적 분위기에 대해 새삼 감탄을 하며 시청을 했다. C4 시그너춰을 드라이브하는 스타일은 너무 옥죄는 느낌도 풀어질 정도의 여유도 주지 않는 중도적인 느낌이었다. 그 결과,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차고 기우는 싸이클을 정확하고 정교하게 그려내는 스피커로 들리게 해주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프레즌테이션이 거침없이 분명한 표현을 하고 있지만, 감미로움이 감돌고 귀에 부담스럽지 않은 소리를 들려준다. AB테스트를 해보지 않은 채로의 기억에 의존한 비교이지만, 전편에 비해 고급스러움이 생겨나 있다는 점과 좀더 달콤하다는 느낌에서 차이를 보인다. 다른 스피커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고급스러운 음색으로의 업그레이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인상은 처음부터 분명하다. 그 차이가 분명한 부분으로서 탄력 있는 베이스 악기들, 듣기 좋다는 느낌을 주는 낮은 저역의 역동적인 운행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94년 버전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에서의 퍼커션은 근래 가장 감동적이었다. 스테이징의 품질을 논하기 이전에 매우 사실적인 울림이다. 직접 눈 앞에서 연주를 한다 해도 울림의 조건을 잘 갖추지 못한다면 이보다 좋지 않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정숙하고 포근한 연주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 뿌려주고 있어서 전반적으로 따뜻한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주변은 어둡고 무대는 아주 밝다.

 

메리디언 M6 시청시에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마빈 게이의 ‘What’s Going On’을 다시 시청해 보았다. 이 곡 또한 탄력 있고 좀더 사실적인 느낌의 베이스가 인상적이다. 이 곡 까지 들었을 때의 C4 시그너춰의 저역이란, 일종의 헤드룸을 둔 저역이라고나 할까? 단정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돌던 전편에 숨쉴 틈을 조금 불어넣어 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곡은 이런 저역의 기반 위에 넓고 여유로운 스테이징 속에 각 악기의 영역을 분명한 사이즈와 울림만큼으로 들려주어 시청자로 하여금 무대 속으로 몰입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 울림의 크기와 에너지 변화가 매우 분명하다.

보컬음악을 유심히 들어보면 중역대를 중심으로 매우 공평한 밸런스를 갖추어 빠르거나 느리거나 슬램이 오거나 해도 낮은 음과 높은 음과의 간격을 매우 정확히 유지시켜 준다. 그러면서도 앞서 말한 여유로움과 포근한 여운이 시청자에게 크게 어필한다. 괴르네가 부르는 ‘겨울 나그네’를 들어보면 사실적으로 그려지는 무대 위에서 분명한 포커싱으로 안정감 있는 울림이 번져 온다. 구체적인데 도취되는 사운드이다. 안나 네트랩코가 부르는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또한 일면 단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풍요로움이 넘치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곡에서 사람의 목소리로 하는 연주에 대해 새삼 느껴볼 수 있었을 만큼, 성대와 온몸을 울려서 들려주는 그녀의 보컬에 잠시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이 남녀 보컬 두 곡만으로도 이 스피커의 장점은 쉽게 설명될 것이다. 인원수를 늘려서 시청해 본 르네 야콥스가 연주하는 바하의 모텟에서는 보컬에 생기가 돌고 울림이 구체적으로 들렸다. 종종빈 공간이 허전하게 그려질 수 있는 곡이지만, 무언가 온기 있는 울림으로 채워진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분위기를 바꾸어 임혹만이 연주하는 ‘Poem of Chinese Drum’으로 트랜지언트 테스트를 해보았다. 예상대로 강한 임팩트, 슬램의 순간에도 거의 불안감을 느낄 수 없이 여유롭게 소화된다. 순간 낮게 떨어지는 대역에서도 잘 뻗어 내려가면서도 저역에서의 노이즈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실리콘 주걱으로 매끈한 유리표면을 닦아낸 듯이 말쑥하다. 매우 잘 설계된 크로스오버이다. 사실 다인오디오의 하드 커버 유닛에서 이런 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저역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보통은 반응이 어렵거나 짧게 처리해서 정확성을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C4 시그너춰는 고급기와 대형기의 조건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동시에 다인 유닛의 장점을 잘 부각시켜주기도 한다.

한편, 피아노에서는 특별한 광채가 있다. 중역에서 높은 대역에 걸친 하모닉스와 보호막처럼 따라다니는 광채나는 탑엔드, 그리고 매우 사실적인 타건의 모습 등이 모두 인상적이다. 길렐스가 연주하는 ‘비창’을 들어보면 명쾌한 타건을 낱낱이 들려준다. 마치 눈이 트이는 듯한 시원함이다. 저역은 잘 서포트하고 고역은 빛나는 그런 피아노를 잘 들려준다. 안정적으로 작열하는 투티와 그 위로 포근한 울림을 그려내면서 생겨난 광채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모습 등은 이 강건한 연주가 아름답게 들리게 한다.

 

사실 어느 장르 특성이 있는 지 잡아내기가 어려운 스피커이다. 왜냐하면 피아노면 피아노, 보컬이면 보컬, 그리고 록음악이면 록음악 골고루 그 특성에 맞게, 좀더 정확히 말해서 소스에 충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생긴 모습으로는 그럴 것 같지 않으면서 전 장르를 고루 구사하는 대표적인 전천후 스피커임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잘 팔리는, 완성도 높은 제품의 후속기의 제작은 분명 안전한 선택이다. 뮤직씬에서도 신곡보다는 명곡의 리메이크가 보장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속작이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많은 고민과 전편에 대한 면밀하고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시켰을 때 전편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C4 시그너춰는 그다지 불만이 없었던 전편을 상당히 매혹적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다인오디오의 미묘한 세그먼트 전략 만큼이나 구석구석을 심도 있게 파헤쳐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C4의 사용자들이라면 누구나 탐을 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걸작이 재탄생되었다고 말하기에 손색없는 제품이다. 강한 소유욕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