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가까이 하이파이 오디 오 한 길만 고집하고 있는 익스포저는 이제 영국에서 상당히 귀한 존재가 되었다. 많은 회사 들이 외국으로 판매된 지금, 아직도 꿋 꿋하게 영국인들 손에 의해 제작되고 있 으며, 더구나 홈 씨어터나 피씨 파이 등 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하이파이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에 이런 존재가 필요하다고 본다. 유행에 상관없이 고품위한 음질과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일 전에 동사의 인티 앰프 1010을 들으면 서 연신 탄복했던 차에 이번에 그 짝이 되는 CDP를 만났으니, 이 회사 제품들 과는 나름대로 인연이 있다 하겠다. 창업자인 존 팔로라는 분은 원래 음향 엔지니어다. 데이빗 보위와 핑크 플로이드 같은 거장들과 녹음한 경력도 있어 서 이쪽 분야의 앞길이 창창했지만, 돌 연 방향을 틀어 앰프쪽으로 돌아섰다. 이후 CD 시대가 오면서 CDP가 추가된 정도로, 제품 종수를 제한하고 있다. 이 정도 연혁이라면 충분히 DVD 플레이어 나 단품 DAC 정도를 추가할 만한데 절 대로 손대지 않는다. 하이파이 유저들 만을 생각해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 로 음질을 높이고, 음악을 만끽하도록 만들까만 생각하는 것이다.

덕분에 이 회사의 신작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다. 10년이 지나도 그대로 나온 다. 그 말은, 기본 설계가 상당히 충실 하다는 것이다. 또 개량한다고 해도 전 원 트랜스나 일부 부품만을 교체할 뿐 기본 레이 아웃은 동일하다. 따라서 처 음 만들 때 상당히 신중하게, 모든 역량 을 투입했다고 보면 좋겠다.

이번에 만난 1010 CD 플레이어는, 외 관을 보면 단촐하기 짝이 없다. 왼편에 트레이, 오른편에 디스플레이 그리고 그 밑에 버튼 몇 개가 전부다. 이들의 표현 을 빌자면 좀 과묵한 디자인인데, 처음 봤을 땐 이상했지만, 보면 볼 수록 나쁘 지 않다. 오히려 기능성과 미니멀리즘을 적절히 조화시켰다고 봐야 한다.

일단 간단한 스펙을 보면, 전원 트랜스 에 상당히 공을 들인 것이 눈에 들어온 다. 30VA급 토로이달 트랜스를 특주해 서 썼다. 디지털쪽은 전원의 영향을 크 게 받는 만큼, 이 부분에 신뢰가 간다. 그리고 성격상 물량 투입을 마구 할 수 없기에, 가장 핵심이 되는 신호 경로에 쓰인 콘덴서만은 오디오급으로 사용했 다. 역시 오랜 기간 앰프를 만들어온 구 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것은 디스플레이 창의 오프 기능. 음악 감상시 이 창을 꺼두면 음질 에 더 유리하다. 이는 최근 PC 파이쪽 에서도 제기되는 문제로, 슬레이트 PC 를 쓸 경우 창을 끄고 안드로이드 폰으 로 조작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 과 무관하지 않다. 한편 옵티컬 아웃 단 자가 있어서 나중에 별도의 DAC를 추 가해서 사용하면 음질 향상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시청을 위해 쿼드의 엘리트 시리즈 프 리 파워에 역시 동사의 11L 클래식 스 피커를 물렸다. 과연 펀치력과 해상력이 양호해서, 이 가격대의 제품답지 않은 실력을 보여준다. 얀센이 연주하는 멘델 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당당하 게 밀려오는 오케스트라의 존재가 압권 이고, 조 수미의 <도나 도나>를 들으면 감칠 맛 나면서 은은한 보컬이 심금을 울린다. 이른바 맛집이란 데를 가보면 별 재료를 쓰지 않고도 입에 착착 감기 는 맛을 낸다. 한정된 예산과 물량에서 이 정도의 맛을 내는 것을 보면, 확실히 엑스포저는 오디오계의 숨은 맛집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