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영국제 인티 앰프들이 우리네 오디오 시장을 점령 하던 시기가 있었다. 대략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에 이르는 기 간이다. 이 시기에 참으로 다양한 제품 들이 바다 건너 멀리 영국에서 왔는데, 모양도 예쁘고, 소리도 충실해서 이리저 리 바꿔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또 이때 엔 다양한 북셀프도 소개가 된 바, 이런 매칭을 통해 브리티쉬 사운드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가격 경쟁이니 뭐니 해서 많은 회사들이 매각된 지금, 순수한 영 국제 혈통을 잇는 제품을 만나기란 쉽 지 않은 상황이다. 이 대목에서 이번에 소개할 익스포저의 존재는 특필할 만하 다 하겠다. 동사가 설립된 시기는 1974 년으로, 지금으로부터 38년전의 일이 다. 창업자 존 팔로우(John Farlowe)는 원래 스튜디오 엔지니어로, 당시 지구의 축을 흔들던 데이빗 보위나 핑크 플로이 드와 작업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런 엄청난 이력을 바탕으로 한다면, 응당 그가 만드는 제품 또한 거대하고, 출력이 높을 것이란 짐작을 하게 하지 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전세계 많은 애호가들이 진심으로 음악을 즐기 기를 바랬고, 그래서 레코딩된 음악 소 스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가격은 무척 중요 한 요소였다. 한 마디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가격대의 제품을 생산한다는 모토를 내건 것이다.

어쨌든 이런 음질 위주의 제품을 만든 다는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아직도 오로지 2채널 하이파이 제품만 만들고 있다. 또 제품 수가 극히 적은 것도 흥미 롭다. 당연히 출력도 높지 않고, 덩치도 크지 않지만, 적절한 북셀프를 걸어주 면 누구나 즐겁게 음악에 빠지게 되는 마법을 선사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제품들이 주위에 많았으면 싶다. 워낙 하이엔드 제품들이 억대로 치닫고, 피 씨 파이라고 해도 이리저리 투자하다 보 면 그 액수가 만만치 않은 지금, 이렇게 순수 2채널 하이파이의 전통을 합리적 으로 지켜가는 회사의 존재가 얼마나 귀중한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 으리라.

이번에 만난 1010 인티 앰프는 동사가 내놓은 시리즈 중 제일 막내에 속한다. 그 위로 2010 S2, 3010 S2 등이 있으며 플래그쉽으로 MCX 시리즈가 있다. 물 론 플래그쉽이라고 해도 가격대는 참으 로 착해서, 동사의 제품들이 오랜 기간 전세계에서 사랑받아온 이유를 짐작케 한다.

본 기가 속한 1010 시리즈엔 딱 두 종 만 포진되어 있다. 인티 앰프 및 CDP가 그것이다. 원래는 세트의 개념으로 함께 시청하는 편이 좋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인티만 시청하게 되었다. 일단 모 양을 보면 미니멀리즘의 극이라고 할까, 지극히 심플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버튼이나 노브의 배 치가 적절하고, 몇 번 만지다 보면 금세 기억할 수 있게 디자인해놨다. 블랙 및 화이트 사양이 있다고 하니 취향에 따 라 선택할 일이다.

입력단을 보면 5개가 제공되고 있는 데, 각각 옥스, 튜너, CD, AV 그리고 플 레이 등이다. 여기서 플레이란 아무래도 턴테이블을 뜻하는 것 같은데, 포노단 내장형이 아니므로, 이 점에서 좀 아쉽 기는 하다. 물론 가격대를 생각하면 이 렇게 바라는 것 자체가 미안하지만 말이 다.

여기서 제일 초점이 되는 출력을 보면 8오옴에 50W를 내는 것으로 되어 있 다. 이 50W라는 것은 경우에 따라선 적고 또 경우에 따라선 많은 수치다. 아무 래도 북셀프 정도의 스피커를 고려한 출 력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동사는 상위 기종이라고 해도 고작 75W 정도를 제 공한다. 이만큼으로도 집에서 음악 감 상하기엔 충분하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여기에 제공된 전원 트랜스의 경우 토로이달 방식으로 해서 120VA급 이 동원되었다. 이는 출력을 고려할 때 상당히 여유있게 투입했다고 평가할 만 하다. 파워 서플라이쪽도 공들여 설계 된 만큼, 일단 앰프의 기본이 전원이라 는 사실을 충분히 간파하고 만든 설계 라 하겠다. 신호 경로는 매우 짧으며, 그 과정에 쓰이는 콘덴서는 무척이나 품질 이 높은 것들로 했고, 알루미늄을 아노 다이징 처리한 마감 역시 수려하다. 즉, 앰프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 한지를 정확히 알아서, 그 핵심을 솜씨 좋게 요리한 인상이다.

한편 동사는 소리에 있어서 상당한 개 방감과 와이드 레인지를 지향한다. 과거 영국제 인티 앰프들이 음악성은 높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무거운 인상을 준 부분에 비하면 이 또한 동사만의 특 징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냥 캘리포니아 햇살처럼 쨍한 소리를 추구한 것은 아 니고, 적절한 음영을 가진 영국적인 분 위기를 기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 히 태생이 중요하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스튜디오 엔지니어링의 배경을 가진 회사인 만큼, 정확한 음을 추구하는 음 향 철학을 갖고 있지만, 고역의 끝자락 이 달콤하게 마무리된 부분은 오히려 오 랫동안 음악을 감상하게 만드는 일종의 첨가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사실 중립 적이다, 라는 말이 오디오계에서는 일종 의 찬사로 들리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 라선 심심하고, 맥없는 음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 부분에서 확실히 동사의 아이덴티티를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CDP는 프로시드 의 PCM 2를 동원했고, 스피커는 달리 의 젠서 7이 쓰였다. 사실 2웨이 스피커 라고는 하지만, 미드베이스로 7인치짜리 구경의 드라이버를 두 발이나 장착한 톨보이 타입이라 50W의 출력으로 좀 무 리가 아닐까 하는 예상은 했다. 그러나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폭풍우가 몰아치 듯 대음량으로 만끽하지 않는 다음에 야, 대부분의 음악 장르를 듣는 데엔 별 무리가 없었음을 밝힌다.

첫 곡은 야니네 얀센이 연주하는 멘델 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일단 준민하 고, 거침없는 보잉이 확 다가온다. 기본 적으로 스피디한 연주인데, 이 대목에서 척척 잘 소화한다. 현대 하이엔드의 미 덕을 잘 계승한 음 매무새다. 적절하게 살집이 붙어서 리얼함이 살아 있고, 배 경의 오케스트라 역시 치고 빠지는 움직 임이 절묘하게 포착된다. 악단과 솔로 주자가 혼연일체가 되어 악상을 주고받 는 모습이 당차게 그려진다.

이어지는 조 수미의 <도나 도나>. 아무 래도 소편성인 만큼, 보컬과 악기들의 개성과 맛이 잘 살아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약간 달콤하면서 온화한 느낌 으로 다가온다. 툭툭 던지는 더블 베이 스의 움직임이 잘 나오고, 보컬의 개성 도 제대로 그려낸다. 특히 중역대가 튼 실해 보컬의 카리스마라는 면에서는 좋 은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스탄 게츠의 . 기본적으로 테너 색스와 어쿠스틱 기타가 서로 주고받는 대목이 핵심으로 서, 보사 노바 재즈의 넘실거리는 리듬 을 바탕으로 멋들어지게 이 부분이 재 현된다. 벨벳 터치로 불리는 게츠의 톤 은 환각 그 자체고, 끊김 없이 수려하게 이어지는 찰리 버드의 화려한 손놀림은 손에 잡힐 듯 리얼하다. 과거 영국제 인 티들이 클래식 위주였다면, 본기는 이런 재즈에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음 이 나와, 확실히 그 사이 개량과 발전이 이뤄졌음을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