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탄생한 또 하나의 300B 인티앰프 제품이다. 채널당 출력관이 2개씩 장착되어 있으면서도 A급으로 구동이 된다. 무게 가 33kg이나 된다. 상당히 정성을 들여서 꼼꼼히 만들지 않고서는 이런 무게가 나오지 않는다. 모노블록의 경우에도 한 개가 십여 kg짜리가 있 고, 스테레오 싱글 앰프라고 해도 이십여 kg짜리도 많다. 물론 무겁다는 것이 성능의 기준은 아니지만 무게 값을 할 것 같은 느낌의 제품이다. 하 지만 지난해 나왔던 동사의 845 앰프에 비하면 가볍다. 그것은 무려 53kg에 달했다. 거의 비슷한 외양을 하고 있는데도 그런 중량이었다.

이탈리아가 고향인 이 진공관 앰프 전문 제작사는 그런 면에서만도 결 코 녹록치 않은 곳인 것 같다. 브로슈어의 사진에서 보건데 백발의 제작 자가 책상 앞에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앰프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제작사는 창립한 지 지금 20년에 가깝지만, 본래 제작자의 부친은 평생을 걸려 트랜스만 만들어 온 세계적 트랜스의 대가였다. 사나비오라 는 상호가 새겨진 트랜스는 세계 각 곳으로 납품되어 일본 제품에도 완 제품이 있다. 현재 생산되는 트랜스에서 사나비오 마크는 특별대우를 받 는 것 같다.

2000년대 이전에는 300B를 사용하는 앰프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근래 들어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흔해졌다. 90년대만 해도 외국제 300B 제품은 찾아보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다가 인기 관으로 소문이 퍼 지면서 출력관도 중국에서 마음대로 생산해 낸 덕분으로 우후죽순처럼 이 관을 사용한 제품들이 쏟아졌다. 당연히 잘못 만든 제품도 많이 있다. 필자 역시 두어 기종의 300B 앰프를 사용하다가 10 여년 만에 모두 치우고 말았다. 잘 만든 5극관의 소 리에 미치지 못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출력이 작다고 해서 알텍이나 울릴 수 있다면 그건 지금의 300B가 아니다. 그 뒤로 보니 윌슨 오디오의 와트 퍼피도 울리는 300B가 있고, 다인오디오도 자유롭 게 울리는 제품도 여럿이었다. 결국 내가 썼던 제품 은 뭔가 포인트를 잘못 잡은 채 물량만 투입한 제품 이었던 셈이다.

이 시청기도 얼핏 보기에 그렇게 보인다. 출력관 을 채널당 2개씩 장착해 24W를 뽑고 있지만 이런 출력으로는 감도 84dB의 스피커를 울리기는 어렵 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미스 매칭이라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예측을 깨고, 간신히 허덕대 면서 울리는 것이 아니라 낭랑하게 자유자재로 울 린다. A급 설계라고는 하지만 놀랐다. 이런 경우도 있단 말인가? 84dB의 그 스피커는 B&W의 미니 모 니터 PM1로 이번 호 시청기이다. 한때 첼로 350 파 워 앰프가 87dB의 B&W 801 앞에서 맥도 쓰지 못 하는 참담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런 350W의 허 구적인 출력과 이 시청기의 24W 출력이 새삼스럽게 비교가 된다. 마치 공항 입체 주차장 같은 스타일의 4중 보호 커버를 장착한 본 제품 은 패러럴 싱글 앤디드 설계이며, 드라이브 관으로 2개의 ECC82와 5687 이 투입되어 있고, 300B 출력관은 제작사의 특주관이다. 정통 진공관 제 품답게 밸런스 입력은 갖추지 않았고, 4개의 RCA 입력 단자와 함께 출력 단자는 4, 8Ω에 대응한다.

A급 제품은 발열이 많지만 중앙의 거대한 파워 트랜스는 몇 시간 가동 을 해도 약간 따끈한 수준. 피드백을 전혀 걸지 않은 시스템이며, 대역은 8Hz에서 40kHz까지로 되어 있는데, 이런 우수한 특성은 트랜스의 탁월 함에 기인할 것이다. 작은 볼륨에도 꽉 찬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A급 앰 프의 특권이지만, 회로랄지 여타의 분야에서 특기할 만한 구절이 없는 걸 로 보면 정통적인 기법으로 최고의 트랜스와 부품을 투입해 만든 정면 돌 파용으로 추정이 된다. 그 결과는 잘 만든 300B 앰프는 이런 정도의 소리 를 낸다는 데몬스트레이션 같다.

웅장하게 뻗어 나가는 관현악의 연주와 장엄한 도밍고의 높아지는 열 창. 그 반주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맑디맑고, 저역을 충분히 움켜쥐고 있 다. 이렇게 힘과 열정과 투명함을 갖춘 소출력 인티 앰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때로는 사 용자를 기만하는 수치의 출력이 있는데 비하면 이런 정직한 제품은 쉽게 만나보기가 힘들다.

전면 스위치의 배열도 간결하기 짝이 없어서, 실 렉터와 볼륨 노브만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일체의 잡스러운 단자를 배제해 버린 근래 보기 드문 간결 한 모습인데, 이러한 배치라면 내부의 케이블도 최 단 거리 설계가 가능할 것이다. 이런 배치는 기본적 으로 수작업 공정이 아니라면 보기 힘든 경우에 속 한다.

시청기를 이달의 시청기인 플레이백 CD 플레이어 와 골든 스트라다 인터 케이블과 스피커 케이블, 그 리고 B&W 미니 모니터 스피커, 그리고 탄노이 프레 스티지 스피커에 교대로 물리고, 헤밍웨이의 고가 스피커 케이블인 레퍼런스 MK2와도 연결했다.

탄노이보다도 기이하게 B&W에 더 매칭이 좋다. 작은 꼬맹이 스피커가 아니라 웬만한 중형 제품 같 다. <브라보 도밍고> 음반에서 도밍고는 웅장하고 그윽하며 청결하기 짝이 없는 톤으로 열창을 보내 준다. 쓸어안은 듯하다는 300B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한다. 약간은 빈약하고 고역이 날카로 운 곡에서도 풍성한 홀 톤을 내보내면서 맑고 깊은 저역의 힘으로 그러한 약점을 조용히 감싸 안고 넘 어가 버린다.

잘 만든 300B 앰프를 여기저기서 가끔씩 만나고 있 지만, 이만한 실력이라면 굳이 모노블록을 쓰고, 웨 스턴을 찾고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 제품은 필자 에게 300B로의 회귀를 점잖게 권유하고 있는 듯하 다. 무도회의 권유가 아니라 300B의 권유이련가.